■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선정 ‘제주고메위크’ 맛집 엄마가 떠났다. 일본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 혜원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갔다. 딸 혜원에게 엄마는 삶의 추억을 가득 남겨준 사람이지만 문득 떠나버린 엄마를 생각할 때면 애증이 교차한다. 도시 생활에 지친 혜원은 엄마가 없는 고향에 돌아와 엄마와의 추억이 서린 음식을 만든다. 혜원에게 음식은 무너진 자신을 다시 일으키게 해주는 힘이다. 허기진 삶을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음식. 이는 현대 사회에서 ‘솔 푸드(soul food)’로도 통한다.
혜원에게 음식은 바로 그런 의미다. 제주로 떠났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 로망이었지만 망설여졌다면 한 번 용기 내보자. 건강한 일탈은 삶의 복원력이 되기도 한다. 혼자 밥을 먹는 일도 걱정하지 말자. 1인 여행자가 많은 제주엔 이미 ‘혼밥’하기 좋은 곳도, ‘솔 푸드’가 될 만한 음식도 많다.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로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은 기간, 음식으로 삶의 쉼표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찾아갔다.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이 선정한 제주고메위크 맛집 80선을 참고했다.
◆ 일본 가정식 ‘모리노아루요’
톡 터질 듯한 수란 곁들인 일본가정식 밥상
제주 애월(제주시 애월읍 하소로 769-58)에 위치한 모리노아루요는 일본 가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이곳은 애월에서도 새소리가 인상적인 장소에 위치해 있다. 말 그대로 목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 낮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꽤 많다. 8년 전 제주에 내려온 김승민 모리노아루요 셰프는 본디 식당을 하기 위해 섬으로 온 게 아니었다. 아픈 아내를 돌보기 위해 제주를 찾은 그는 당시 모든 일을 내려놓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내를 위해서라도 그는 일을 해야 했고 결국 애월에 터를 잡았다.
다시 식당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그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스터쉐프코리아’ 대회에 참가했고 결과적으로 시즌1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아내와 함께 잠시 쉬기 위해 찾아온 제주는 결과적으로 그의 삶을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김승민 셰프가 내놓는 일본 가정식은 단정하다. 점심 메뉴는 가이센동(해산물 덮밥), 메로동(메로구이 덮밥), 부타동(돼지고기 덮밥) 등이 있다. 함께 나오는 수란 하나만 봐도 내공이 느껴진다. 숟가락이 닿는 순간 ‘톡’ 터질 것만 같았던 노른자는 부드러운 단단함이 느껴진다. 마치 김승민 셰프를 닮은 듯하다. 이곳에는 혼밥족을 위한 홈바 테이블이 있다. 김승민 셰프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다.
◆ 두부요리 전문점 ‘신의한모’
제주 콩과 물로 빚은 두부로 만가지 요리
신의한모에 들어서면 제주 바다를 마주하면서 혼밥을 즐기는 이들이 여럿 눈에 띈다. 애월(제주시 애월읍 하귀14길 11-1)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식당은 두부요리 전문점으로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문근찬 신의한모 셰프는 “과거 이자카야를 10년간 운영해봤지만 정말 두부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요리를 내놓고 싶은 꿈을 늘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곳은 메뉴도 다양하지만 요리마다 모두 다른 식감의 두부를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신의한모에서는 직접 두부를 만든다. 문 셰프와 공동 창업자인 이계훈·김태윤 셰프가 일본 에도시대부터 두부를 생산해온 센다이 지역에서 ‘오보로도후(순두부)’를 직접 배워왔다. 두부를 향한 이들의 열정을 알게 된 한 일본인 사업가가 도움을 주면서 두부를 향한 꿈이 영글었다. 특별히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좋은 물과 콩 때문이었다. 이들은 마치 신의 솜씨로 만든 것 같은 두부를 만들겠다는 꿈과 희망을 요리에 담는다.
한치게장 두부덮밥, 우니(성게알) 두부덮밥은 1인용 식사로 인기다. 두부를 튀겨 낸 아게다시도후와 와사비크림 새우두부도 추천 메뉴다. 두유 도넛과 아이스크림도 놓치면 안 될 디저트다.
◆ 제주 본태박물관의 ‘카페본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박물관서 커피 한잔 2012년 문을 연 본태박물관(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762번길 69) 안에 자리 잡은 카페다. ‘본래의 형태’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본태박물관에는 한국 전통 생활공예품을 비롯해 세계적 작가들의 현대미술품 전시관, 그리고 구사마 야요이의 상설전시관 등이 있다. 구사마의 대표작 ‘무한 거울방’에 홀로 들어가 거울에 비친 ‘나’를 마주하는 것은 나 홀로 여행의 독특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꽃상여를 볼 수 있는 전시관도 이색적이다.
서귀포시 내륙에 자리 잡은 본태박물관은 세계적인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도 유명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제주의 자연과 조화를 이뤘다. 청명한 날이면 건물 곳곳에서 산방산을 볼 수 있도록 세심히 설계됐다. 컬렉션이 뛰어나 외국인도 많이 찾다 보니 연간 방문자가 10만명에 달한다. 제주고메위크 80선에 포함된 곳은 아니지만 문화적 호사를 가득 누린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인생 커피’로 남을 만하다.
▶▶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은… 지난 10~19일 열흘간 열린 제3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은 제주 고유의 식재료와 음식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축제다. 해마다 세계적인 셰프들의 참가가 확대되면서 글로벌 미식 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올해도 콜롬비아의 다니엘 프라다, 폴란드의 마치에이 노비츠키, 프랑스의 올리비에 샤농 등 최정상 셰프들이 참가해 화제가 됐다. 행사 수익금은 제주 한라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도 쓰인다. 매년 5월 중순에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제주 지역의 맛집 80곳을 엄선해 알리는 제주고메위크와 연계해 진행된다. [제주 =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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