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금귤과 땅콩으로 만든 최규성 셰프의 디저트 ‘제주의 밤’. ②도미에 살짝 데친 아스파라거스를 조화시킨 폴 셈보시 셰프의 ‘도미 카르파초’. ③표고버섯 퓌레를 곁들인 김선옥 셰프의 ‘한우 갈비찜’. ④딱새우를 올리브유와 토마토즙에 절인 에드가 케사다 피자로 셰프의 ‘딱새우 에스카베체’.
“이렇게 진한 향이 나는 표고버섯은 처음 봐요. 케일도 제주도에서 자란 건 깊은 단맛이 나고 줄기도 부드러워 쌈 채소처럼 먹을 수 있더라고요.”
싱가포르에서 미쉐린 1스타 ‘메타(META)’를 운영하는 김선옥(35) 셰프가 제주산(産) 식재료에 찬사를 쏟아냈다. 지난 11일 열린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에서 한우 갈비찜을 선보인 김 셰프다. 퓨전 아시안 음식을 만들어 온 그는 제주에 오면서 새삼 한식의 매력에 눈을 떴다고 했다. 뭉근한 불에 마흔 시간 넘게 끓인 갈비에 표고버섯으로 만든 퓌레와 표고 피클을 곁들였고, 케일 한 줄기씩 올렸다. “제주만의 맛이 있더라고요. 그걸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제주도는 ‘한 달 살기’의 메카였다. 외지인이 급증하면서 각종 카페나 퓨전 음식점이 우후죽순 생겼다. 이 과정에서 제주만의 맛과 특색은 차츰 엷어졌다. 관광객 1500만명 시대를 꼭짓점으로 찍더니 최근엔 2년 연속 관광객 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사람들의 돌아선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지난 11일 여섯 명의 내·외국인 스타 셰프가 머리를 맞댔다. 여섯 개의 이색 요리가 그렇게 완성됐다.
◇물냉이·누에콩·딱새우의 향(香)
일본 오사카에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프렌치 레스토랑 ‘애드혹(Ad Hoc)’에서 일하는 셰프 다카야마 다쓰히로씨는 제주의 물냉이와 누에콩, 보리의 맛과 향에 주목했다. 다쓰히로의 아버지는 제주도 출신의 한국인.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돌담이 있는 집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바다의 풍미와 돌담의 기억을 살리고 싶었다”는 것. 옥돔에 검은 빛깔의 튀김옷을 입혀 튀겼고, 조개껍데기와 함께 익혀 바다 내음이 풍기는 보리 리소토, 쌉쌀하면서도 향이 좋은 물냉이와 누에콩은 데치고 갈아 퓌레로 만들어 곁들였다.
스페인 출신의 에드가 케사다 피자로 셰프는 딱새우로 만든 스페인식 절임 요리 에스카베체(escabeche)를 내놓았다. 그는 “제주 딱새우는 다른 새우보다도 감칠맛이 강하다. 이 맛 그대로를 살리기 위해 식초와 올리브유 정도만 곁들였다”고 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임서형 셰프는 전통 제주 가정식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그가 준비한 ‘제주반’은 두부, 돼지고기 수육, 제주도식 순대를 함께 먹는 제주도식 삼합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빠지지 않는 음식. 임 셰프는 “육지에 비해 제주도 두부는 쫄깃한 맛을 낸다. 이걸 얇게 구워 바삭하게 만들었고, 속에 메밀가루를 섞어 뻑뻑한 제주도식 순대는 잘게 으깨 부드러운 식감을 냈다. 기존의 제주도 음식을 살짝 비틀어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남쪽 바람을 품은 달큼한 맛
셰프들은 “제주 식재료가 육지 재료보다 더 달큼하다”고 했다. 해비치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밀리우’에서 일하는 폴 셈보시 셰프는 “따뜻한 남쪽의 바닷바람을 품은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얇게 저며 올리브유에 절인 도미와 살짝 데친 아스파라거스를 내놨다. 제주의 아스파라거스를 한 입 깨물자 달콤하고 아릿한 수분을 머금은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디저트 카페 ‘세드라’를 운영하는 최규성 셰프는 금귤을 이용한 디저트를 만들었다. 이른바 ‘제주의 밤’. 금귤을 30분간 설탕과 끓인 것을 우도 땅콩 비스킷 위에 도톰하게 얹은 뒤 초콜릿을 한 겹 더 발라 케이크로 만들었다. 그는 “새까만 제주 밤하늘과 떠 있는 ‘노오란’ 달을 표현했다”며 “제주는 밤 공기조차 달고 아삭하다”고 했다.